책 IV

지식

타오르는 장관을 이루며 용암 호수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녹아 버린 표면은 걸쭉하게 부글거리다 거품을 터트리고는 끓는 액체 부스러기를 허공에 뿌려 댑니다. 온 풍경이 못마땅한 시선으로 노려보는 것 같습니다. 건너편까지 멀지 않아 우회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겠지만, 그래도 당신은 어려운 과제를 눈앞에 두고 미간이 찡그려집니다. 이 열기에서는 생각하기도 숨쉬기도 버겁습니다.

투박한 바위 징검다리가 호수를 가로질러 반대편 호숫가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징검다리 일부는 우아하게 건널 수 있지만 일부는 믿음의 도약을 감행해야 합니다. 리듬을 찾는 것이 핵심입니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으며 당신은 앞으로 발을 내딛기 위한 정확한 순간이 오기를 천천히 기다립니다.

용암 건너편에 척박한 툰드라가 기다립니다. 잠시 세상의 움직임이 정지하고, 그 사이 당신의 생각은 아레니아를 찾아갑니다. 당신은 그녀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둘 사이에 끊을 수 없는 연결 고리가 구축된 듯합니다. 그녀가 이 여정을 인도하기 위해 당신에게 어떠한 마법을 주입했을까요? 아레니아는 영웅 중의 영웅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능력을 당신에게 일부 전이해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전령이 그녀에게 어떤 불가능한 힘을 내려 주었을까요? 대가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레니아는 어떤 힘을 얻고 어떤 힘을 빼앗겼을까요?

돌연 요란한 소리가 당신의 생각을 방해합니다. 당신은 폭풍우 지역에 가까이 있습니다. 이곳은 모든 것이 불안정합니다. 마법들이 충돌하는 형태로 발생해 서로 타오르며 대기를 휘젓고 전기적으로 불안한 상태를 유발하는 전설의 장소입니다.

순간 거대한 번개 한 줄기가 캄캄한 하늘을 가릅니다. 공기가 위협의 기운으로 울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고대 성소에서 조각 무늬로 묘사되어 있던 거대한 드래곤을 떠올립니다. 전기가 요동치는 구름 위에서 분노를 표출하며 날개를 죽 펼치고 있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불안한 마음에 당신은 걸음을 재촉합니다. 날개 달린 기괴한 생명체들이 하늘에서 떼를 지어 윙윙거리며 죽음의 전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요란한 소리가 점점 커져 갑니다. 빛줄기들이 비명을 지르며 하늘을 가릅니다. 그중 하나가 꿈틀대는가 싶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 당신에게 질주해 옵니다. 좌우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빛줄기는 먹구름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며 밑으로, 밑으로 내려오다 마침내 뚜렷한 형상을 갖춥니다. 해골 곤충입니다. 전기를 일으키며 역겨운 빛으로 윤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당신은 몸에 지닌 무기들을 진정시킵니다. 당신의 무기들은 저런 생명체를 상대로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간단한 에너지 역행 주문을 재빨리 전개합니다. 투박한 마법이지만, 전기를 이용하는 생명체를 족히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곤충은 한 줄기 번갯불로 산화해 사라집니다.

당신은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눈동자 하나가 흥미를 품고 당신에게 시선을 찔러 대고 있습니다. 태양처럼 커다란 눈동자입니다. 눈동자가 깜빡입니다.

당신이 그 크기를 가늠하려고 뒤로 물러서는 사이 드래곤이 하늘로 솟아오릅니다. 몸체가 하늘보다 거대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드래곤의 옆구리에서, 구역질 나도록 낯익은 모종의 검은 안개가 피어오릅니다.

그제야 당신은 길을 제대로 가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당신은 베인이 수도에 왔을 때 도시를 가득 메웠던 안개를 떠올립니다. 온몸의 온기를 모조리 강탈해 가던, 섬뜩하고 새카맣고 숨 막히는 덩굴손 모양의 안개! 바로 전령을 따라다니던 그 안개와 동일합니다. 당신은 로브를 입고 있던 수수께끼 인물의 경고가 생각납니다. "저 안개에 따라잡히지 마시오." 하지만 그러기에는 조금 늦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윽고 드래곤이 강하하자 그 거대한 주둥이가 당신에게 접근해 옵니다. 주둥이는 커다란 턱을 떼어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는 뜨겁고 고약한 입김을 당신에게 풍겨 댑니다. 바로 그때 놀랍게도 주둥이가 말을 합니다.

"그대는 지나갈 수 없다, 여행자여."

드래곤의 목소리는 지치고 노쇠했지만 나름 짙은 위협을 품고 있습니다. 당신이 작고 하찮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일말의 망설임 없이 뭉개 버리겠다는 목소리입니다. 그리고 목소리는 한 가지 임무를 띠고 있습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게다가 곤란하게도 당신의 죽음입니다.

당신은 마음을 단단히 먹습니다. 말츠가 준 부적이 묵묵히 목에 걸려 있습니다. 딱히 보탤 말은 없는 모양입니다. 당신은 아레니아가 곁에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대의 용기를 빌려 주시오.

"나는 그대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드래곤이여. 나는 그대의 왕국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눈앞의 거대한 짐승은 경멸이 담긴 깊고 뜨거운 한숨을 내쉽니다.

"그대가 서 있는 곳은 외부 지역으로 가는 입구다. 아무도 이곳을 통과할 수 없다." 드래곤은 궁금하다는 듯 그 거대한 머리를 당신에게 들이밉니다. "이 규칙이 그대에게는 예외일 이유가 있는가?"

당신은 어깨를 으쓱입니다.

"아무래도 나는 목적 없는 규칙 따위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드래곤이 무표정한 눈으로 당신을 응시하고, 당신은 그런 드래곤을 눈빛으로 제압합니다. 그러자 드래곤이 웃음을 터트립니다. 거대한 뱃속에서 나오는 요란하고 깊은 웃음입니다.

"허, 이런! 그 목적이라는 건 바로 그대의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필멸자여! 또한 그대가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을 보호하는 것이다."

드래곤이 갑자기 공격을 가합니다. 앞발로 별 생각 없이 한 번 후려칩니다. 당신은 몸을 굴려 공격을 손쉽게 피한 다음 그 여세를 몰아 적의 정면에 대고 원초적인 마법을 한바탕 퍼붓습니다. 공격은 썩 대단하지 않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적을 당황케 하고 동시에 당신은 양팔을 들어 보호의 표식을 생성합니다. 표식은 드래곤의 입에서 발사된 거대한 화염구가 당신을 집어삼키는 순간에 늦지 않게 발동됩니다. 다만 보호막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입니다.

아레니아, 그대의 존재를 느낄 수 있어요. 제발...

침착하세요.

드래곤은 하늘로 도약하며, 지상을 태워 버리기 위한 복잡한 번개 문양을 생성합니다. 당신은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육체 안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아레니아, 지금!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되어 드래곤의 공격을 맞받아칩니다. 드래곤의 번개는 방향이 반전되어 드래곤에게 쇄도하고 이내 강렬한 전기를 방출해 드래곤을 강타합니다. 드래곤은 화염에 휩싸이며 고통스럽게 울부짖습니다.

"반드시 너를 막을 것이다!" 드래곤이 포효합니다. "나는 라주, 하늘의 제왕이다! 너는 외부 지역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너의 존재는... 틀렸다!"

다시 한 번 마법의 물결이 당신의 육체를 관통하고 드래곤을 타격해 폭발합니다. 드래곤은 비명을 지르며 육체를 뒤틀어 댑니다. 이내 몸을 가눈 드래곤은 숨을 깊이 들이쉽니다. 올 것이 왔습니다. 당신을 지옥으로 날려 버릴 최후의 폭발입니다. 당신은 최후의 일격에 맞서 고개를 듭니다. 놈이 스스로 무덤을 파게 놔두십시오.

드래곤이 숨을 내쉬며, 도시 하나를 집어삼킬 화염의 벽을 방출합니다.

"아레니아가 나의 방패가 되리라!" 당신이 외칩니다. 그러자 드래곤이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번개 화살이 그 비늘을 뚫어 내고, 드래곤의 육체는 화염에 휩싸인 채 지상으로 추락합니다. 드래곤이 지상에 떨어지자 지면이 굉음을 내며 요동칩니다. 당신은 돌무더기 바닥에서 속절없이 튕겨져 나가 몇 발자국 떨어진 곳까지 천천히 굴러갑니다. 헉헉, 당신은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먹구름이 걷혔습니다. 흐릿한 회색 빛이 스며들며 전방의 길을 밝혀 줍니다. 외부 지역이 앞에서 기다립니다. 이번에는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요구 조건

  • 번개 지방 1회 완료